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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인삼의 역사 고찰과 인삼약초시장의 흐름

by 박인군 2014. 8. 4.

 

 

금산인삼의 역사 고찰과 인삼약초시장의 흐름

 

 

 

오늘 날까지 금산에서 인삼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 한 것은 1500년 전에 진악산 개삼터에서 내려오는 설화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새로운 사실을 밝히면서 인삼의 유래를 쓰려고 한다.지금까지 15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온 금산인삼이 그것도 설화로만 전해지고 있었는데, 최근에 중부대학교 최태호교수는 인삼의 역사를 새롭게 고증하며 TV를 통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밝힌바가 있다.

최태호교수에 의하면 삼국사기와 중국문헌에서 고증이 되면서 백제 무령왕이 양나라에 인삼을 보낸 사실을 찾아냈다고 한다.신증동국여지승남을 통해 금산군 진산면 일대가 백제부터 조선시대까지 인삼의 주산지임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금산인삼이 1500년 이전부터 이미 중국에 보내질 정도로 세계적 명품으로 전해지며, 역사에서 설화로 알려진 것 보다 100년 정도가 더 앞서는 것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한다.금산군에서도 연구 결과를 금산 인삼의 세계화에 적극 활용할 계획으로 있다고 하였으며, 금산인삼의 역사가 한 단계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다.

위에서 필역했듯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금산인삼의 역사가 그동안 설화로만 전해 온 내용을 보면서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자세히 밝혀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금산군은 오랫동안 인삼의 고장으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그동안 빠른 성장을 해왔다.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해방기를 전후해 금산에서 인삼 재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면서, 지형과 토질, 기후조건이 최적지로 알려지며 금산은 인삼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8,15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60년대를 전후해서 그 당시에 금산군의 인구는 10만을 훨씬 넘고 있었으며, 거리나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금산중앙국민학교(초등학교)는 학교 교가에서 3000명의 건아들이 라고 불러지고 있었으며,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관경이다.

그리고 그 당시 금산시장은 씨름판과 서커스 공연 그리고 야외 천막극장 등 야바이꾼이 득실거리며 속임수로 장사를 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풍습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때 그 시절 나름대로 문화가 흐르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약 60년 전 금산시장에서 처음으로 노점상을 탈피하며 소규모지만, 인삼시장이 생기면서 인삼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인삼시장의 탄생은 인삼경작 인구를 점차적으로 늘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수물량 수요증가로 점차 이어지게 되면서 외처로까지 진출을 하게 된다. 전국으로 판매를 넓혀가기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인삼이 그 당시는 귀하기도 했지만 고서를 통해서 효능 또한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가격도 높게 거래 되었다. 지금은 옛날일이 되었지만, 도보 보부상들이 인삼을 머리에 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정방문을 하면서 판매를 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힘들게 번 돈은 자녀들 교육을 가르치는데 대부분 쓰여 지면서 생활을 하였다.그런 시절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오늘의 금산인삼시장이 어렵게 발전해 오면서 성장의 발판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도보 보부상들의 활동은 생각해 보면 유통시장의 판매 방법의 원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삼시장은 해마다 빠른 발전이 진행되고 교통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편리성과 함께 시장은 놀라운 성장을 이룩한다. 인삼시장의 발전은 미미하게 거래되던 약초시장까지 동반성장의 기회가 주어지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약초약령시장도 눈부신 성장과 서울 경동시장과 대구약령시장등과도 어깨를 견주는 시장으로 부상한다.

 
여러 가지로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80년대에 들어서며 미래 지향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금산인삼제" 축제가 전국에서 최초로 건강축제의 시작을 알리며 급부상하게 된다. 그 후에 금산인삼시장이 세계 최고의 수출국으로 발전하며 전성기를 맞이 한다. 그리고 금산인삼축제가 오늘 날에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축제 중에서 최고를 자랑하며 올해로 34회를 맞게 된 것이다.

해마다 축제가 이어지면서 금산인삼브랜드 가치는 갈수록 극대화 되었으며,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금산인삼시장이 세계 최고의 수출지역으로 발전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축제는 인삼산업의 발전과 함께 금산인삼약초시장도 함께 성장하는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금산에서 세계인삼엑스포가 열릴 수 있는 것도 그러한 힘과 저력이 뒷받침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90년대는 전매제도로 묶여있던 홍삼제조 판매가 일부 자유화 되면서 금산에서 인삼약초시장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되며 시장은 호경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인삼산업법으로 인해 시장은 다시 침체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글로벌 정보화 시대를 함께 맞이하게 되면서 시장은 나름대로 많은 변화도 예견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 불황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발생되며 내수 경기는 오히려 더욱 힘들어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10월 1일부터는 "한약재 수급및 유통관리 규정"에 따른 약사법까지 시행을 하게 된다고 한다.

금산인삼약초시장은 시장이 생긴 이래 가장 힘든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처지에서 안타갑게도 약사법 시행까지 이중으로 규제법이 만들어지며 전국으로 널리 알려진 금산인삼약령시장은 사상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박인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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