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좋은글/명대사]아인슈타인의 명언,좋은글,명대사
오늘은 명언, 좋은글, 명대사 중 아인슈타인의 것만 한 번 모아봤습니다. 책을 참고 했고요. 파트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가 마음에 드는 것만 모아봤습니다.
창조성과 교육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좋은글,명대사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를 더 오래 연구할 뿐이다.
광기란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것을 할머니에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정규교육 속에서 호기심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이다.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전 세계를 일주한다.
위대한 정신은 항상 평범한 사고의 맹렬한 반발에 부딪혀왔다.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어느 것이 자랄지는 결코 알 수 없으니 계속 씨를 뿌려라. 어쩌면 모두 자랄 수도 있겠지.
소수 만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다.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그 게임의 규칙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규칙을 배운 후에는 누구보다 더 그 게임에 몰입해야 한다.
인생과 행복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좋은글,명대사
나는 기쁨이나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이것들을 '돼지 사육의 이상'이라고 부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산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다.
작은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에겐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
나는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탁자, 의자, 과일 한 바구니와 바이올린. 행복해지는 데 그 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행복한 사람은 지금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이 애써 추구하는 진부한 것들, 즉 소유나 외형적 성공이나 사치 따위가 항상 나에게는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결혼은 문명으로 포장된 노예제도나 다름없다.
과학과 윤리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좋은글,명대사
멋진 여자와 연애하고 있을 때는 1시간이 마치 1초처럼 흘러간다. 뜨거운 숯 위에 앉아 있을 때는 1초가 마치 1시간처럼 흘러간다. 그것이 상대성이다.
시간에 대한 유일한 이치가 있다면, 모든 일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리학은 우리를 A에서 B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우리를 어디든지 데려갈 수 있다.
나는 자연에 대해 약간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다.
환경은 내가 아닌 모든 것이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죽음과 신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좋은글,명대사
해답이 간단할 때는 신이 답하고 있는 것이다.
신은 언제나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한다.
사람이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은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뿐이다.
지배하기 보다 섬기는 것이 개인의 숭고한 운명이다.
슬픈 일이지만, 이기주의와 경쟁심은 공공심이나 책임감보다 훨씬 강하다.
정치와 사회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좋은글,명대사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의 양심과 양식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전쟁은 조상들이 벌인 기괴한 행동이라고 인식하는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타인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마라. 시기적절한 비판만큼 좋은 것도 없다.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아인슈타인 - 천재의 열정과 자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이자 평화주의자였다. 그의 대단한 상상력은 기존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며, 수학과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생 그 자체에 대해서도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개성과 양심적이고 겸허한 인간성 그리고 뛰어난 유머감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저 평범한 말도 그가 하면 주위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왠지 모르게 우리에게 사랑스럽게 다가오고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연구엔 남다른 열정을 보였지만 일상생활은 아주 귀찮아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아인슈타인은 상당한 악동이었다. 쉽게 짜증내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장난감을 집어던지곤 했다. 여동생 마야가 "천재의 여동생은 두개골이 튼튼해야 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세탁비누로 세수를 했으며, 걸레로 얼굴을 닦고, 재떨이에 밥을 담아 먹는 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이 잦았다. 언제나 수염은 너덜너덜하고 발바닥에 땀이 너무 많아 양말 신기를 꺼려했다. 이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촉구하는 서한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하려고 질라드와 함께 백악관을 방물했을 때도 양말을 신지 않았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시오니즘 운동을 펼치다 히틀러의 미움을 산 그는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래서 영어에 서툰 그는 대학에서 강의했을 때 영어 철자가 틀려 학생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 이때 그는 혀를 내밀고 머쓱해 하곤 했다. 이런 장면은 1951년에도 연출되었다. 아인슈타인 교수의 72번째 생일 때 프린스턴 캠퍼스까지 찾아온 사진가 애더 새스에게 흔해 빠진 미소 대신 혀를 내민 포즈를 취해 유쾌한 장난을 쳤는데, 이 사진은 나중에 세상을 바꾼 사진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그러나 이 사진 속의 혀는 일반적인 혓바닥이 아니라, 노벨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가 형식적인 것을 거부하는 괴짜로,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바꾼 혀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과학계에 탁월한 업적을 남기고도 항상 겸손하고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가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까닭은 아마도 이렇듯 뭔가 빈틈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1903년 1월, 베를린에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생 시절부터 사귀었던 세르비아계 헝가리 출신의 세 살 연상인 밀레바 미리치와 결혼했다. 혼전에 딸 리제를을 낳았고, 결혼 후 한스와 에두아르트라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딸은 입양시켰다는 설과 태어난지 얼마 후 성홍열로 죽었다는 설이 있다.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초기엔 그럭저럭 지냈으나 점차 사이가 나빠져 별거에 들어갔고,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스위스로 가버렸다.
1912년부터 그는 이혼녀 엘자 뢰벤탈과 가까워졌다. 그녀는 네 살 연상으로 사촌간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 2월 미레바와 정식 이혼한 뒤 자기가 아팠을 때 극진히 간호를 해준 그녀와 6월에 결혼했다. 그동안 이혼을 해주지 않았던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타면 상금을 모두 주겠다며 끈질기게 졸라대자 결국 이혼을 해준 것이다. 실제로 상금은 모두 밀레바에게 건네졌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명언을 남긴다. "지금의 아내가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말로 편하다. 하지만 첫 아내는 과학을 이해했었다."
그는 동물을 무척 사랑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치코'라는 개와 '타이거'라는 고양이 그리고 '피포'라는 앵무새를 길렀다. 취미는 퍼즐과 편지쓰기, 악기 연주, 음악 감상, 독서, 요트 타기 등 다양했다.
퍼즐은 세계 각국의 것들을 수집했으며, 편지는 1만 통 가까이 썼고, 가끔씩 음정이 틀릴 때도 있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즐겼으며, 바흐와 모차르트 그리고 슈베르트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한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리마조프의 형제들이었는데, 괴테와 톨스토이, 로맹 롤랑과 버나드 쇼의 작품들도 즐겨 읽었다. 동시대의 존경하는 인물로는 마하트마 간디,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퀴리 부인, 버트런드 러셀,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리 채플린 등을 꼽고 있다.
*아인슈타인 명언 보누스 출판사 참고
'기타메뉴 > 사람을 사랑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Rmsrl (0) | 2011.04.05 |
---|---|
[스크랩] 굿바이~남아공 월드컵 태극전사들~ (0) | 2011.04.02 |
[스크랩] ♣ 빌 게이츠家의 자녀교육 10계명 ♣ (0) | 2011.03.28 |
[스크랩] [실화] 어느 아빠의 감동적인 이야기 (0) | 2011.03.13 |
[스크랩] 시골의사 박경철의 서재 (0) | 2011.03.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