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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빈병 팔아 식사를 해결했던 스티브 잡스

by 박인군 2012. 4. 5.

빈병 팔아 식사를 해결했던 스티브 잡스
      
    [정말 신기한 현상]
    ◐ 예수크리스도가 보입니다 ◑
    
    한번 체험해보세요, 
    그림의 중간에 점 4 개 있는 거 보이시지요?
    점 4 개를 30 초정도 똑바로 쳐다보신 후, 
     잠시 눈을 감으세요.
    그 다음 벽이나 천정을 향해 눈을 떠서 
    깜박 깜박거려보세요~(초점을 한곳에 모우고)
    동그란 빛 가운데 뭐가 보이세요?
    인자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시지요?  
    
      ♡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5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잡스는 췌장암 등으로 병마와 싸워왔으며 지난 8월엔 CEO에서도 퇴임했습니다. 아이폰5에 대한 발표 후 잡스에 사망소식까지... 현재 최고경영자 팀 쿡은 "창조의 천재를 잃다"고 말했습니다. ◐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 요약) ----빈병 팔아 식사를 해결했던 스티브 잡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 졸업식에서 말하는 것이 대학 졸업식에 처음으로 가본 경험이 될 것입니다. 리드 대학(Reed University)에 입학한 후 6개월 만에 중퇴했습니다. 학교를 중퇴한 후에도 18개월이나 학교에 남아 청강생으로 제가 듣고 싶던 과목을 들었습니다. 학교를 그만 둔 이유가 무엇이냐구요? 저의 생모는 대학생때 임신을 한 미혼모였습니다. 나를 키울 자신이 없었던 엄마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입양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입양을 하되, 양부모는 반드시 대학출신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세웠습니다. 생모 뱃속에 있을 때, 이미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이 된 상태였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었고 딸이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기에 변호사 부부와의 입양 계약은 깨지고 말았다. 대신 웨이팅 리스트에 있던 지금의 부모님이 나를 대학에 꼭 보내겠다는 각서를 받은 후에야, 입양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나는 17년 후에, 리드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부모님이 노동자로 가난하게 살면서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저의 학비에 써야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가난한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학비에 써버리기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한 결정 중에 가장 훌륭한 결정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그만두니, 평소 흥미를 갖지 못했던 전공과목이나 교양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고 대신 제가 좋아하는 다른 과목들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정규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기숙사 방을 구할 수가 없어, 친구 방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으며, 밥을 사먹을 돈이 없어, 코카콜라 병을 갖다 주고 받은 5센트를 모아 밥을 사먹거나, 일요일이면 밥을 공짜로 주는 하레 크리스나 절에 가 식사를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호기심과 직감에 의해 그 절을 다녔지만,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나에게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리드 대학에서 가르치는 서예 클라스는 미국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학교 게시판에 붙이는 모든 포스터나, 심지어는 학교의 모든 책상 서랍에 붙이는 라벨까지도 아름답게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정규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전공과목을 꼭 들어야 할 필요가 없기에, 서예(Calligraphy)를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활판 인쇄술에 관해서도 배웠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인 것들에 많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이것들을 배우면서, 나중에 밥벌이가 된다는 생각이나 희망을 주지는 않았지만, 10년 후, 첫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그 당시 배웠던 모든 것들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배운 모든 것을 맥킨토시를 디자인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맥킨토시가 컴퓨터로서는 처음으로 아름다운 활판 인쇄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때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서예 클라스를 수강하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지금처럼 다양한 서체를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아주 일찍 발견하였습니다. 워즈와 나는 내가 20대에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 회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아주 열심히 일했고, 10년 만에 애플은 자산이 2조원이며 직원이 4,000명이나 되는 거대한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내 나이 29살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맥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나이 30이 되었을 때, 나는 회사에서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를 당했느냐고요? 회사가 커지면서 나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아주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어떤 분을 회사 CEO로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비전이 다르면서 우리 둘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그 사람의 사이가 아주 나빠졌을 때, 회사 이사회가 그 사람 편에 서서 나를 회사에서 해고시켰습니다. 그때 내 나이 30살이었습니다. 나의 해고 소식은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나의 모든 관심이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입니다.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5년 후에 데이비드 팩커드와 봅 노이스를 만나 그들을 만나 "실망시켜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럴 때, 조심스럽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비록 애플에서 쫓겨났지만, 아직도 내가 하는 일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나는 그 일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당시 해고당한 후 그렇게 힘들었던 경험이, 지금 생각하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대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고당한 후 5년 동안에, NeXT라는 새 또 다른 회사 Pixar를 설립하고 지금의 내 부인인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Pixar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애니매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개발했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매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이런 획기적인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애플은 NeXT 회사를 병합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부인 로레네와 나는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약은 쓰다는 말처럼 살아가면서 당신 머리를 돌로 치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신념을 잃지 마십시요.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것은 내 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당신의 짧은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Stay Hungry. Stay Foolish(계속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 전진하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 요약-

    출처 : 여정건 & Life is Beautiful
    글쓴이 : 靑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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