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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의총리 칠백의총과 금성산 술래길

by 박인군 2014. 6. 14.

 

 

 

금산의 칠백의

 

 

충남 금산 호국영령의 성지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과

승병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700여 명의 의병이 왜적과 싸움을 벌인 곳이며 금산에 위치해 있다.
청주성을 수복하고 이곳 금산 싸움에서 수적인 열세에도 용맹스럽게 싸우다

 전원이 전사를 하게되며 이곳 금성면 의총리에 모시게 된 것이다.

 의병들의 넋을 기리며 사적 제105호로 지정하고 있으며, 나라를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서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 관리 되고 있다.

주변에는 잘 가꿔진 잔디밭에서 산책도 하고, 활쏘기 등
전통체험도 경험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곳 칠백의총에서 가까운 곳에는 금성산 술래길이 있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칠백의총을 찾아 구경도 하지만, 얼마 전부터 금성산이

등산도 겸해서 즐길 수 있는 긴 코스가 잘 만들어지면서

운동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의외로 많이 찾게 되면서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금성산 금비단이불 전설

 

금산군 금성면과 복수면, 추부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 높이는 437m로써 금성면의 진산이다.
금성면 이라는 명칭도 이산에서 연유할만큼 유명한 산이라 일명 비단산이라고도 부른다.

금성산에는 금비단이불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와룡평에 많은 논밭을 가지고 있는 김첨지는 오늘도 지름길 따라 금성산을 넘어오면서 "후유"하고 한숨을 쉬었다.
돈이 많아서 여유는 있었지만 그의 머리는 아들5형제 때문에 큰 골치꺼리였다. 자수성가한 그는 처음부터 게으른 자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야 겨우 눈을 비비고 나오는 큰아들이나, 주막에서 하루해를 보내는 둘째아들이나, 노름판을 따라 다니는 세째아들이나, 선비흉내를 내는 네째아들이나, 책이라면 눈을 돌리기도 싫어하는 다섯째아들이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에게 의지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렸으며 늙어서는 자식들을 모두 짝을 지어 내보내고 그는 아내와 단둘이서 호젓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성산을 넘어올 때 많은 새들이 울고 있었다. 항시 보아도 아름답기만한 금성산에 오르면서 사람도 저렇게 푸르게 살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후유"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대로 자식들은 장가보내서 큰아들부터 모두 집에서 멀리 제급을 내어서 보냈다.
큰아들이 장가들던 다음날 진산에 집을 마련해주고 먹고 살만큼 땅을 사주었으며 둘째 아들은 부리 현내고을에, 셋째아들은 무주에, 네째아들은 진천에, 다섯째 아들은 금산에 모두 집을 마련해주며 그들이 먹고 살만큼 여유를 주어서 내보냈다.

자식들을 모두 내보내고 나니 늙어서 힘에 겨웠지만 농사일을 열심히 했다.
자식없는 것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지만 그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자식들과 어울리며 집안이 법석법석할 때가 좋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산이 아름다우면 산 속도 아름다워야지. 그래, 내가 재산을 모아서 뭘하나.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면 놈들이 게을러서 늙어서 고생할께고. 자식이야 그만하면 됐지 뭐.... 그려, 금으로 비단이불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 비단 이불을 금성산에 묻는거야. 그러면 산이 더욱 아름다워지
겠지."

그는 혼자서 빙그레 웃고는 그 이튿날 먼저 진산장에 가서 금으로 비단이불을 만드는 방법을 물어봤다. 그러나 비단이불을 아무도 본적이 없었으므로 어덯게 만들어야 할지 아무도 그 방법을 몰랐다.
다음은 금산 장날 금산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아무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허전한 생각에서 보약이나 지어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친구가 경영하는 한약방에 들렸다.
한약방 의생은 안색이 좋지 않은 그를 바라보고는"자네, 뭐, 지금 금으로 비단이불을 만든다며? 이사람아 그야 쉬운일이 아닌가? 금덩어리를 얇게해서 실로 이어 놓으면 금 비단이불이 되겠네" 하고 허허 웃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그는 "옳지, 그거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그는 그 길로 집에 돌아와서는 진산, 금산 멀리는 무주, 청주까지 드나들면서 금을 사다가 얇게해서 구멍을 만들어 길게 늘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돗자리를 엮듯이 엮어서 비단이불을 만들 생각을 했다.
금산, 진산에서는 금이 동나기 시작하였으며 한양에서도 금장사들이 드나들기 사작했다.
그가 금으로 비단이불을 만든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나갔다.
그가 비단이불을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자식들은 그동안 하는 일 없이 놀고만 먹다가 재산을 탕진하고는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를 찾아와서는 자식이 굶어죽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금비단이불을 덮고 살 것이야고 항의하는 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에는 아랑곳 없이 금만 모으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며칠을 묵으면서 아버지를 졸라대고는 아버지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자식들은 아버지가 안방에 챙겨놓은 금을 강탈해서 나눠 갖자고 공론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말을 엿들은 아버지는 자식들을 안방에 불러놓고는"너희들은 어째서 집에만 웅크리고 앉아 있느냐! 내가 모은 재산을 더 탐내지마라. 애비가 어떻게 벌어들인 돈인줄 아느냐. 부지런하면 금덩이도 집에 뒹굴어 들어오는거야. 당장 너희들 집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들이 사는 꼴을 한번 살펴본 다음 줄것은 주고 못줄건 못주고 할테니 당장 집에 돌아가라."
이렇게 말하여 자식들을 그날 밤 모두 내쫓았다. 자식들을 보내고 난 다음 그는 생각했다.
내가 비단이불을 짜다가 자식들에게 화를 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저녁 몇 차례를 금성산을 오르내리면서 자기가 미리 봐둔 자리에 금을 가지고 가서는 넓게 파묻기 시작했다.
몇번 오르내렸는지 삼십번은 더 오르고 내린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금을 메고 나서는데 새벽닭이 울기 시작하였으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금을 묻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는 금을 들고 낮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금을 꺼내서 줄에 이으고 있을 때 갑자기 몸에 진통이 오므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쓰러지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굴을 메우기 시작했다. 산사태였다.
그는 진통이 오는 몸을 움켜잡고 일어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굴을 메우는 흙더미를 보면서 웃으면서 묻혀 눈을 감았다.

그는 항시 사랑하고 아끼던 금성산에서 그가 일생동안 모은 돈으로 금을사서 비단이불을 만들다가 끝내는 굴속에서 죽은 것이다.

그 후 마을에서는 김첨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김첨지의 친구인 한약방 주인만이 막연하게 그는 금성산에 스스로 무덤을 정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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