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생각해 온 것과는 다른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당황하곤 합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려는 최초의 시도를 합니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인생수업》중에서 -
뤼게릭병을 선고받고 모리 교수는 망연하기만 하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평스럽다. 햇볕은 내리쬐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여자는 주차 미터기에 돈을 넣으러 달려갔고, 또 어떤 이는 식료품 봉지를 들고
바쁘게 걸어갔다. 모리 교수는 아무 일 없는 듯 잘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세상이 멈춰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 사람들은 내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나 있을까?
그렇다. '내'게다. 죽음을 선고 받은 건 '나' 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니다. 나를 뺀 나머지는 정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잘도
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리는 어안이벙벙한 것이다. 그러나 모리는 금세 마음을 바로 세운다. 그대로 죽음에 자신을 내맡
길 순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 세상에서 그대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보람 있는 삶을 살 것인가?'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로,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기로 결정한다. 위엄 있게, 용기 있게, 유머러스하게, 침착하
게 말이다.
모리는 자신의 제자 테드를 불러 이렇게 말한다.
"생명이 사그라지는 나를 천천히 참을성 있게 연구하시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시오. 그리고 나와 더
불어 죽음을 배우시오."
죽음을 배우라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도 배워야 하는 그 무엇이었던가. 그는 '죽어 간다'라는 말이 '쓸모없다'라는 말과 동의
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모리는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죽어
야 하는지를 몸소 실천한다. 테드는 날마다 어안이벙벙하다.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볼 수 없고 샤워 후에 자기 몸을 닦지도 못
하며 심지어 침대에서 자기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스승은
너무나도 천연덕스럽다. 모리는 의문에 싸여 있는 제자 테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어 가는 것은 그저 슬퍼할 거리에 불과하네. 불행하게 사는 것과는 또 달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불행한 사람이 아주 많아. 난 죽어가고 있지만 날 사랑하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죽어가는 건 아니지만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모리는 죽어가고 있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 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테드는 교수님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그가 보내는 질 높은 시간들이 부럽다.
그는 병이 나기 훨씬 전부터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했다. 여러 개의 토론 그룹을 운영했고 친구들과 산책을 했으며 하버드 스 퀘어 교회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또 가난한 사람들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린 하우스'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강의를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책을 읽었고 동료들을 방문했으며 졸업생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게는 편지를 썼다. 그는 맛있는 것을 먹고 자연을 감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신에 텔레 비전 시트콤이나 주말의 명화 따위를 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대화와 교류, 애정과 같은 실을 잣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리는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 주할 때조차도 그 절반은 자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한 다. "인생을 의미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한다." 모리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모리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마지막 인생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고 했던 자신의 말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가 했던 주옥같은 말들을 골라 냈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는 건 아니다.(9쪽) 내 의식이 지속되는 한 난 우주의 일부라네.(22쪽) 어느 날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 줘야만 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소.(56쪽)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지만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76쪽)
나도 삶이 끝나갈 때는 죽음이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 마침내 타인끼리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 수 있을까?(91쪽)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92쪽)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울 수 있어.(129쪽)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벗겨 내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130쪽) 일흔여덟 살에, 교수님은 어른으로서 나눠 주는 동시에 아기로서 받고 있었다.(먹는 일은 물론 배변까지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계속하며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몫을 하느라 자신을 소진하고 있었다.)171쪽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게. 그러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으로 괴로워지지도 않고 말이야. 다른 사람의 것을 탐 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풀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거야.(185쪽) 요즘 가여운 젊은이들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든가, 성급하게 결혼하고는 대여섯 달 후에 이혼을 하든 가 둘 중 하나를 택하네. 그들은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를 몰라. 하긴 자기가 진정 누구인지도 모르니 결혼하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나?(208쪽) 결혼은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아. 자기가 누구인지, 상대방은 누구인지, 둘이 어떻게 맞춰갈 건지 탐색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209쪽) 사랑과 결혼에 대해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가지 규칙이 있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들 사이에 큰 문제가 닥칠지도 모 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두 사람의 가치관은 비슷한 게 좋아.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바 로 결혼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라네.(209, 210쪽) 백인과 흑인,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 남자와 여자, 모두 다 똑같아.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인류라는 대가족에 합류하고 싶을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인류라는 대가족을 서로 돌보고 싶어질 거야. 죽어가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같다는 게 참말임을 알게 되네. 우리 모두 출생이라는 걸로 똑같이 시작하지. 그 리고 똑같이 죽음으로 끝나네. 그런데 뭐가 다르다는 거야?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게.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세우란 말일세.(219쪽) 우리가 아기로 삶을 시작할 때는 누군가 우릴 돌봐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그리고 나처럼 아파서 삶이 끝나 갈 무렵에도 누군가 돌봐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여기에 비밀이 있네. 아이 때와 죽어 갈 때 이외에도 , 즉 살아가는 시간 내내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220쪽) 타인과 자신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누구나 나처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 지는 못하지.(232쪽)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죽음을 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지. 인간이 자연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239-240쪽)
어쩌다 보니 죽어가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났다. 난 그들 앞에서 자신을 곧추 세우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곤 했었다. 그런데 모
리처럼 가슴 속을 명징하게 해주는 이는 없었다. 가슴팍이 서늘해지는 겨울의 초입, 한 권의 책으로 마음밭이 따뜻해진다. 죽
음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평화롭고 훈훈할 수 있다니!
공감하신다면 하트 ♡ 꾹~
'기타메뉴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글 "소년과의 약속" (0) | 2016.08.30 |
---|---|
따뜻한 하루 (화를 다스리는 법) (0) | 2016.01.07 |
[스크랩] **[그윽하다 시조]김덕남-젖꽃판** (0) | 2014.08.31 |
[스크랩] 웃음은 강도의 마음도 바꾸게 한다 (0) | 2014.06.07 |
[스크랩] 아이들의 지나친 휴대폰 사용, 이래도 방관할 건가요? (0) | 2014.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