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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농악

by 박인군 2012. 1. 4.

 

 

 

농악의유래

 

 

세시풍속과 관련되어 노작·축원·군사·걸립놀이 등으로 민중의 생활 깊이 스며들어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행하던 민속종합예술 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굿을 가리키는 말로 전통시대의 민간사회에서는 굿·매구(매귀)·풍장·풍물·두레 등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농악이라는 용어는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처음 사용했고 '농악'이라고 통칭하게 된 것은

8·15해방 이후 국악정리사업이 이루어지면서부터였다.

이 명칭은 일제의 '조선혼말살정책'에서 비롯된 것인데 일제는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조선문화

특히 민속문화에 관한 조사 사업을 통해 무속종교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무속신앙은 가장 중요한 탄압대상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공동체를 형성·유지하는 장치역할을 해 온

마을굿을 철저히 제지했다. 그러나 1920~33년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면서

농업장려운동의 하나로 두레굿만은 허용했다. 

굿하는 단체들은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민간생활의 다양한 형태에서 공동체를 형성했던 장치 기구인 굿은 농업에

관련된 음악으로만 국한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꽹과리·징·장구·북의 4가지 타악기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태평소·나발의 관악기와

그밖에 버꾸 등이 곁들어지는 농민음악을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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