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박근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대구 - )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현재 제18대 국회의원 이며 전 한나라당 대표이다.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어머니는 육영수이다.형제자매로는 이복언니 박재옥과 친동생 박근령,박지만이다. 종교는 천주교로서 세례명은 율리아나이다.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가 어머니 육영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한 1974년부터 대통령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한 1979년 10월까지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후 1982년 육영재단,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물려받아 운영하였다.
1998년에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과 미혼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등으로 국회의원 후보 출마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출신 성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 및 영남, 어머니인 육영수의 고향인
충청지역의 지지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200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으나 대선 전에 복귀했다.
2002년 5월 12일 북한을 방문,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회담을 하고
5월 14일 서울로 돌아왔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이 다수(133석/273석)이던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려고 단식농성을 했다.
비슷한 성향의 언론과 학계의 지원이 있었으나 한나라당은 국민의 외면을 받고 물거품이
되었다.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례없는 급락으로 최병렬 대표 마저 사퇴하게 된다.
이때 착실하게 당 내에서 입지를 쌓고 있던 박근혜가 그의 뒤를 이어 3월 23일
당 대표가 되었다.
기존의 다선의원, 중진의원, 운동권에서 포섭해 온 세력 등과 다르게 박근혜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했고,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 외의 선전을 하였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충호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베어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06년 6월 16일에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에 돌입했다.
박근혜의 가장 큰 적수는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그 과정에서 청계천 복원, 버스노선 개편 등으로 인기를 끈 이명박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부패 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BBK 주가 조작사건 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는 당원 투표에서 400표 정도 앞서서 승리하였으나,
당원 투표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2800여표 가량을 이명박에게 패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2008년 총선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 내부에는 친이명박 계열과 친박근혜 계열의 논쟁이 있었다.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를 직접적으로 도와준
이재오, 이방호 등이 한나라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상대적으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은 홀대를 받았다.
2008년 총선에서 이재오, 이방호 두 명은 적극적으로 이명박 계열의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세우고, 공천에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박근혜는 이에
대해 공천의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수차례 비판하였으나 공천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서청원, 홍사덕 등의 주도로 공천에서 탈락한 박근혜계 정치인들이 대거 탈당하여 친박연대를 창당하고, 다른 정치인들은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였다.
박근혜는 이들과 행보를 같이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잘 되길 바란다"는
언질을 보냈다. 급기야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천 결과에 대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강도높게 비판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로 달성군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었고,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 전국구 8석이라는 예상 외의 높은 지지율을 달성하였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총 12명이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박근혜는 꾸준히 친박연대 및 무소속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을 요구하였다. 친박 측과 앙금이 남아있던 강재섭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고 박희태 전 의원이 대표로 부임한 뒤 마침내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 의원과 친박연대의 지역구 의원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였으나,
친박연대의 전국구 의원 5명은 당명 개정, 독자 활동을 준히 하고 있고 양정례,
서청원, 김노식은 당선무효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
또 노무현 정부의 4대 개혁 입법 논쟁 당시에도 박근혜는 국가보안법에서 고무
·찬양과 같은 독소 조항을 빼자고 주장했으며, 자신이 대표로서 이끈 두번의 전국 선거에서 상향식 공천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박근혜는 뉴라이트 세력과 가까운 모습을 몇 차례 보여주며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면을 드러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한나라당의 길은 다르지 않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고 선진화를 위해 '공동체
자유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다는 것도 같다"고 한 바 있다.
또한 박근혜는 뉴라이트 교과서를 극찬하며 "이제 걱정 덜게 됐다" 라고 했다. 박근혜도
이들의 뉴라이트의 교과서 포럼 등 움직임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표한 바 있다.
또 4대 개혁 입법 논쟁 당시 사학법 개정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말로 인한 잡음이 거의 없었으며, 부패와 연루된 전력도 전혀 없다. '수첩 공주'라는 별명을 얻게 한 그녀의 신중한 태도는 안정적으로 당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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