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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테라

by 박인군 2014. 6. 12.

 

 

 

       밀란 쿤테라

 

 

 

세계적인 거장 밀란 쿤데라(85)가 14년만에 신작을 발표한다.

 

밀란 쿤데라의 신작 '무의미의 축제'(민음사)가 7월 국내 출간될 예정이다.

이 소설은 농담과 거짓말, 의미와 무의미,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작가가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1.

쿤데라라는 대가는 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따라오라고 재촉한다. 그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길은 낯설기만 하다. 길 주변의 풍경은 희미하여 잘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단지 손을 잡은 대가를 믿기에 지루한 길을 무작정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고개를 넘으면 대가가 힘들게 만든 커다란 성이 보여진다. 그 성을 들어가면 여러 방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있다. 그 문 하나하나를 밀치고 들어갈 때마다, 각각의 방은 인간의 각각 다른 다양한 냄새를 전해준다. 그 방들은 각각 다른 형태의 장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대가가 설계한 그 성의 공간 하나하나를 느릿한 걸음으로 한 번씩 거닌다. 공간을 설계한 대가의 숨결이며, 고통이며, 통찰력이 그대로 저며온다. 어느새 성을 다 둘러보고는 성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전율에 흘러내린 식은 땀을 닦는다.

2.
시인 황지우는 그의 산문집에서 문학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해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역사는 흘러가고 가끔은 역사 속의 이데올로기며 거대서사는 개인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 몰아감의 강제에 처한 개개인의 상처는 역사라는 큰 물줄기에서 묻히기 일쑤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매체는 그 상처를 잊지 않고, 어루만진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라는 소설도 체코 공산주의하에서의 역사 속에서 상처받고 좌절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3.
나에게 어떤 소설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역사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고 답한다. 광장의 이명훈은 두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전쟁이라는 현장에서 한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구원을 목도한다. 그리고, 이 농담의 주인공 루드빅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다운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공산주의의 이념에서 끔찍한 폭력들을 경험하고, 그 폭력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만, 그 복수도 시간이라는 흐름 하에서 농담처럼 흐지부지하게 된다.

4.
소설의 주인공 루드빅은 대학교에서 스탈린주의자인 여자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엽서를 건넸다가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서 군대에 강제 징집된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Optimism is the opium of the people! A healthy atmosphere stinks of stupidity! Long live Trotsky!"

정치범으로 몰린 그는 탄광에서 일하는 강제노역을 하게 되고, 그 절망의 끝에서 루치에라는 공장노동자를 만난다.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상황에서 만난 한 여인과의 만남은 그에겐 구원이었고 생의 전부였고, 군대에서 아주 가끔씩 주어진 외출에서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구렁텅이에서 생을 유지하게 하는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20대 혈기왕성한 청년의 육체에 대한 욕망과 어린시절 성적 학대에 의한 루시에의 육체적 상처로 그들의 만남은 엇갈리고 만다. 이후의 여러 얘기들도 루드빅이 정치재판에서 심문한 인물에 대한 복수와 루치에와의 사랑이 주요 모티프로 이어져간다.

5.
작가는 루드빅이라는 한 인간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기 위해, 시점을 계속 변화시킨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도 하고,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남을 통해 본 루드빅의 이야기도 보여준다. 그런 각도로 본 주인공은 보통 작가의 첫소설이 자전적인 이야기에 토대해 있음을 감안하면 쿤데라 자신을 닮아있기도 하지만, 독자인 나를 닮았다고도 느꼈다. 아니 인간에 대한 풍부한 깊이있는 이해가 루드빅이라는 인물에 담겼기에 어쩌면 모두를 다 닮아있을 수도 있겠다. 소설 중심부의 사건들이 흥미로워 보다 훌륭한 결말을 기대했는데, 마지막 부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쩌면 거기엔 내 기대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겠지란 미련을 주며 언젠가 다시 책을 잡게끔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을 남겨두게 한다.

6.
농담(Joke)이란 농담이 가지는 뜻을 잘 아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중 찰나의 타이밍에만 동작하는 말의 기교이다. 약간만 경계를 넘어가면 농담이 가지는 의미는 희석되어버리고 가끔은 오해되기도 한다.

루드빅이라는 인간은 소설에서 몇 번의 농담을 던졌다. 그 농담은 그 의미대로 와 닿지 못했고, 그가 원래 의미했던 바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희석되고,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래 가끔씩은 젊은 시절 너무 진지하게 붙들고 있는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게 많다. 그렇게 역사는 이성적이지 않게 농담처럼 장난을 치기도 한다.

"만일 역사가 자기 고유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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