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침뜸으로 봉사활동하는 김남수 옹 “배워서 남 주자” 생활철학 침뜸으로 실천 하루 50명만 환자 받고 노인들 무료로 "침구사 제도 없어져 미국으로 유학가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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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침구(鍼灸ㆍ침과 뜸)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김남수 옹은 아흔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하다. 1915년생으로 올해 94세인 김 옹의 목소리는 카랑카랑 했고, 피부는 젊은이 못지않게 고왔다. 청년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김옹 을 한 번 만나면 우리의 전래요법인 침뜸의 효능에 대한 신뢰감이 단번에 생길 듯싶 다. 그의 호 구당(灸堂)은 ‘뜸집’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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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임 기념사업회(이사장 김남수)에서 번역한 조선시대 침뜸의학서 '침구경험방'
뜸사랑의 침뜸 봉사실은 구청의 노인복지관, 청소년회관,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곳에
설치해 놓고 있다. 국회에도 설치해 놓아 유명 정치인이 많이 애용하고 있다. 악수
잘하기로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악수를 많이 한 날 후유증으로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그때 김 옹을 불러서 치료했다. 그래서 김 대통령으로부터 얻은 별명이
‘한번 침’이다. 김 옹에게서 한 번만 침을 맞으면 해결된다는 의미다.
‘배워서 남 주자.’ 김 옹이 만든 뜸사랑의 구호다. 1984년 뜸사랑을 만들어 봉사활
동에 나서는 것은 침뜸의 효능을 굳게 믿는 침구인(鍼灸人)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
다. “20여년 전 여행하다가 시골 노인들이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유명을 달
리하는 현실을 보고 봉사활동을 펼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자신이 원장으
로 있는 서울 청량리 남수침술원에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환자 50명만 선
착순으로 받고 남는 시간은 모두 봉사활동에 쏟아 붓는다.
“침과 뜸은 우린 인체의 경혈(經穴)이란 자리에 자극을 주어서 신체가 스스로 치유하
게 도와주는 기법입니다. 경혈은 몸의 에너지가 지나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죠. 침뜸
의학으로 대표되는 동양의학은 사람의 자연치유력을 회복시키는 치료 방법입니다.”
김 옹에 따르면 경혈은 우리 몸에 약 1000개가 있으며, 이 가운데 치료에 주로 쓰이는
상용혈은 100개 정도다.
“건강의 핵심은 인체의 치유 능력입니다. 살면서 전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더할 나
위 없겠으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병은 약하게 앓고 얼른 회복되는 것이
건강의 관건입니다. 뜸은 건강의 핵심인 인체의 치유 능력을 높이는 의술입니다.”
김 옹은 “뜸을 통한 봉사활동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것은 일반인도 뜸을 배우는 것
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침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반면
뜸은 처음에 뜸을 놓는 뜸자리를 잡을 때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이후에는 정해진 뜸
자리에 스스로 또는 가까운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계속 할 수 있습니다. 10분만 교육
받으면 누구나 뜸을 뜰 수가 있습니다. 또 비용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뜸에 대한 그의
예찬은 끝이 없다.
1915년 전남 광산군에서 태어난 그는 선친으로부터 한학과 침구학을 전수받았다.
1943년 침구사 자격을 얻은 그는 해방을 거쳐 6ㆍ25 전쟁 이후 상경해 서울에서 개업
했다. 이후 뛰어난 솜씨로 ‘침뜸의 대가’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또 세계침구학회
연합회 교육위원을 역임하는 등 국제 침구계에서도 활약했다.
요즘엔 치료와 봉사활동을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전통 침구치료법의 부활을 위한 연
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쓰고 있다.
그 동안 ‘뜸의 이론과 실제’ ‘침뜸이야기’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침구사의 맥이
끊어지면 안 된다’ ‘생활침뜸의학’ ‘침뜸의학개론’ 등 십수권의 책을 냈다.
▲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남수 옹
침구술에 대한 애정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허임(許任) 기념사업회에서
지난 6월 뜻 깊은 책을 한 권 펴낸 데서도 알 수 있다. 허임 기념사업회에서는 1644년
(조선 인조 22년)에 발간된 허임의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이란 책을 번역해
내놓았다. 허임은 조선시대 선조~인조 때의 침의(鍼醫)로 침구를 보급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침구경험방은 허임이 조선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침구술을
정리한 침구전문서입니다. 조선의 침뜸의학서적은 허임의 침구경험방에서 비롯된 것
이죠. 이 책은 우리나라 침뜸의술의 발전과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간결하
면서도 실용적인 이 책은 허임 자신의 독창적 견해와 치료 경험을 많이 수록하고 있어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주목했습니다.” 김 옹은 “선조 37년(1604년) 선조
의 편두통을 치료하는 장면이 조선왕조실록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면서 “당시 최고
의 의학자인 허준과 침술의 대가인 허임이 동시에 등장하여 선조를 치료하는 대목에서
조선의 침구술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침체된 침구 교육 부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엔 국내 침구사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1962년 의료법 개정 이후 침구사 관련 조항이 법전에서 사라지면서
국내에선 더 이상 침구사가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 옹의 남은 꿈은 침구사 제도가
국내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일본만 해도 침구전문대학이 80여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도 침구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여럿 있습니다. 침구술을
발전시켜온 한국인이 침구술을 배우러 미국으로 가는 것이 말이 됩니까?” 국내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침구사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남3녀 중 장남과 막내딸도 침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장남은 현재 김 옹과 함께
일하며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막내딸은 미국에서 침구학을 공부하고 있다. “저는
침과 뜸으로 병과 승부하며 병을 낫게 하는 재미로 살아온 침구사입니다. 저의 마지막
승부는 모두가 침과 뜸을 알고, 침과 뜸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날 끝날 것입니다.” “배
워서 남 주자”고 외치는 김 옹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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